검정 고무신의 추억(성탄절에)
영세를 받고 성탄전야 성당을 찾으며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지금은 자리를 옮겨 그 자취조차도 찾을 수 없는 이웃 동네 초라한 시골교회
정확치는 않지만 그 교회의 지붕은 초가지붕이었던 것 같다
시골 집에서 1,000m정도 떨어 진 이 교회는 종탑이 목재로 세워져 있고 시간마다 교회 집사가 나와 '땡땡' 종을 울리곤 하는 교회 였다
믿음이 없던 나는 유일하게 교회를 찾는 것은 성탄절을 앞두고 교회에서 나눠주는 사탕 때문에 크리스마스 즈음 정략적으로 교회를 찾곤 하였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지금보다도 눈이 더 내렸던 것 같다
당시 요즘처럼 방한장구가 넉넉하지 않은 터라 신발은 당연히 고무신이고 어린 마음에 무릎까지 차 올라오는 눈길을 헤치며 걸어서 친구들과 교회까지 가는 길과 집에 돌아오는 길은 험란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동네 친구들과 같이 가는 길이기에, 그리고 사탕하나 입에 물고 기분이 좋아 돌아오는 길이기에 추운지 모르고 그 기간만큼은 잘도 다닌다
그리고 나서 성탄절 행사가 끝나고 나면 믿음이 없던 나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해이던가
밑창이 다 닭아 물이 새던 고무신을 보고 아버지께서 이웃에 있는 5일장인 고부장에 가서 검정 고무신을 하나 사오셨다
당시 새 신을 사면 의당 하는 의식이 하나 있다
다들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터라 벗어 놓고 보면 네 것 내 것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내 것이라는 표시로 불 도장을 신발 안창에 찍어 두는 의식이다
통상 헌 우산대를 많이 사용 했는데 도장을 하나 찍기도 하고, 두 번을 찍기도하고 세 번을 찍기도 한다
아님 칼로 이름을 새기는 아이들도 있는 가 하면 어떤 아이는 페인트로 표시를 하기도 했다
새 신발에 기분 좋았던 나는 사탕도 탈 욕심으로 추운지도 잊은 채 나는 교회가는 동안 신이 나 있었다.
그 날따라 눈이 많이 내렸다.
사탕을 한 웅큼 받으면서 오늘 밤 제발 산타할아버지가 꼭 오셔서 과자며 양말이며 선물 한 아름 가져다 주시라고 두손 모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모르는 찬송가도 이사람 저사람 쳐다보며 입만 달싹 거렸다
이내 예배가 끝나고 교회당을 빠져 나오면서 신발장을 바라본 나는 앞이 깜깜했다
불 도장을 찍어 놓았던 내 새 고무신이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아마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가면 있을 거야 하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시간은 몇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남은 고무신 한 컬레, 그 것은 밑창이 휑하니 뚫어진 낡은 것 한 컬레만 신발장 한 구석을 유일하게 나 딩굴고 있었다.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어린 마음에 청천하늘에 날 벼락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두 눈에는 주체없는 눈물이 흐르고, 아버지한테 혼 날 일도 걱정되고, 당분간 밑창 나간 고무신을 신고 다닐 일도 끔찍했다
돌아오는 길 주위 친구들의 격려성 발언은 아예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의 충격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돌아갔다
그 후 주님을 다시 찾은 것이 43년이라는 세월이 필요로 했다
내 스스로 신발을 관리하지 못한 나의 잘못을 자책하면서 그동안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이제는 하느님의 믿음으로 새싹을 돋게 한 것이다
지난 47년간의 냉담의 시간, 다시 하느님께서 날 부르신 것이다
달가운 사탕발림이 아니라 신심으로 주님께 나 스스로 다가 선 것이다
지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주님만을 믿고 따르며 주님말씀대로 살아 갈 것을 다짐해 본다
'고향은 지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보름 날에 (0) | 2011.02.17 |
---|---|
세상 떠난 큰 누님 (0) | 2009.04.24 |
영원 길거리 문화제(시 낭송) (0) | 2008.11.16 |
영원 길거리 문화제3 (0) | 2008.11.16 |
영원 길거리 문화제2 (0) | 2008.11.16 |